줄리오

by W.Y.,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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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에리트레아인에게는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모두 그 이름을 친숙한 이웃의 이름으로 여겼다.

"줄리오! 줄리오! 뭐 해? 어젯밤엔 어디 갔었어? 아바 쇼울에 갔었나?"

우리는, 내가 자란 동네인 게제렛에서, 그 이상한 이름을 가진 남자에게 그렇게 소리치곤 했다.

줄리오는 내 동네에 사는 정신지체를 앓는 이탈리아-에리트레아계 남자였다. 그는 담배와 술에 중독돼 있었고, 그가 피우는 담배의 양은 나를 두렵게 만들곤 했다. "어쩌면 인간이 저렇게 많은 담배를 피우고도 살아 있을 수 있지?" 어릴 적의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줄리오는 그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주 늙은 여인이었고, 한때 이탈리아 군인과 결혼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 어머니는 게제렛에 있는 산 프란시스코 교회 근처의 멋진 빌라를 상속받았다. 그들은 그 유산과 이탈리아 정부에서 지급한 연금으로 살아갔다. 어머니는 부자였다. 소문에 따르면 그녀는 매달 10,000나크파를 받았다고 한다. 근처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부유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단 한 푼도 주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면에서도 특이한 사람이었다. 멋진 옷도 사지 않고, 자동차도 사지 않았으며, 자주 이웃들에게 토마토와 양파를 빌리거나 우리 집에서 밥을 먹곤 했다. 어느 정도는, 줄리오에게 돈을 안 주는 것이 술이나 담배의 과소비를 막는 효과가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분명 인색한 여인이었다.

줄리오는 늘 자기 집 문 앞에 앉아 있곤 했다. 두 블록 밖에서도 보이는 푸른 정원이 있는 그 집 말이다. 누군가, 특히 이탈리아계 사람을 보면 "에이, 피콜로! 피콜로!" 하고 외치며 돈을 달라고 했다. 하루에 1에서 10나크파 정도를 거두었는데, 누구를 붙잡았느냐에 따라 달랐다. 그리고 그 돈으로 우리에게 담배를 사 오라고 했다. 어머니가 그를 집에 가두어 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종종 집에 갇혀 있기도 했다. 우리는 그를 피하려 했지만, 그는 폐가 나갈 정도로 소리를 질러댔고, 그러면 결국 우리는 불쌍한 마음에 담배를 사 주었다. 그는 담배에 대해 유난히 까다로웠다. 반드시 골드 두 개와 맨체스터 세 개. 가게에 골드나 맨체스터가 없으면, 그는 우리를 3마일 정도 떨어진 중앙 시장까지 보내 담배를 사 오게 했다.

그는 나를 "웨디 야코브" 라고 불렀다. "웨디" 는 "~의 아들" 이라는 뜻이고, "야코브" 는 내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줄리오와 그의 어머니는 70년대부터 우리 집 맞은편에 살고 있었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가 내 아버지를 알았다고 믿고 싶다. 그가 나를 부를 때 아버지의 이름을 썼기 때문이다.

아, 그리고 줄리오의 아바 쇼울 이야기도 있다. 아바 쇼울은 아스마라의 '핑크 스트리트' 같은 곳이다. 명백한 주거지이지만, 악명 높은 유흥가로 알려진 곳. 줄리오는 연애 상대가 될 만한 여성이 없었기에 그곳에 자주 갔다. 그는 그곳에서 성매매를 했다. 돈이 없을 땐 그 여성들의 보디가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기묘한 사람이었다.

줄리오는 그런 것들을 자랑처럼 떠벌리곤 했다. 그의 이야기는 너무 생생해서 역겨우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줄리오, 어제는 어디 있었어? 뭘 했어?" 하고 소리친 것이 그를 짜증나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 이야기를 하면서 드문 미소를 보일 때면, 그는 그 이야기를 정말 좋아했구나 싶었던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두 시간 거리의 친척 장례식에 참석하느라 일찍 나가셨고, 내가 열쇠를 잃어버린 걸 잊으셨다. 누나가 근무를 마치고 집에 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줄리오가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나는 무서웠다. 집의 문틈을 사이에 두지 않고 그를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웨디 야코브, 왜 아직 밖에 있니?" 그가 물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그냥 여기 앉고 싶어서요." 내가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내게 해를 입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인생, 받은 교육에 대해서. 믿기 어렵겠지마는, 그는 실제로는 엔지니어였고, 이탈리아 토리노의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고 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그 모든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세부 사항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나는 그를 이해했었다. 정확히 어떤 뜻인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나는 그를 이해했었다.

그는 대학 시절 위험한 "악마" 를 만났다고 했다. 그건 바로 항정신성 약물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그걸 시도했고, 그 느낌이 좋아 빠지게 되었다. 어머니는 줄리오를 에리트레아로 돌려보냈다. 아스마라에는 그런 악마가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이미 약물 중독에 빠져 있었다. 알약, 담배, 술.

나는 이탈리아 도시들에 대해 질문하며 그와 교감하려 했다. "밀라노, 로마, 나폴리는 어때요?" 물론, 나는 축구 팬이었기에 세리에 A 같은 팀 이름밖에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는 그 도시들에 대해 다 알고 있었다. 최고의 음식, 날씨, 주말의 밤 문화까지. 모든 것을.

그날 이후, 나는 그를 더 이상 예전처럼 볼 수 없었다. 줄리오는 우리가 친구들과 함께 조롱했던 동물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그 동물을 쓰다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아팠다. 그가 불쌍하기도 했지만, 그 내면의 인간을 알아가는 일은 짜릿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 대부분에게 있어 광인이었지만, 때때로 그 천재성이 스치듯이 드러나곤 했다.

토리노 출신의 천재 엔지니어, 줄리오 멜로티를 만난 건 내게 기쁨이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대학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뒤였다. 그는 더 이상 나를 "웨디 야코브" 라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손을 떨며 불안하게 몸을 흔들고 있었다. 아마 금단 증상 때문이었으리라. 내가 말했다.

"안녕, 줄리오. 나 기억나?"

그는 대답했다.

"에이, 피콜로. 돈 있어?"

그리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이젠 내가 돈 있을 나이라고 생각하나. 세월 참 빠르군."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에게 3나크파를 주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다. 나는 지금도 친구들에게 전화할 때 묻는다. "그 사람 아직 동네에 있어?"

그는 해를 끼친 적이 없다. 내 기억에, 누구를 공격한 적도 없었다. 그는 그저 토리노 시절에 만난 그 악마를 달래기 위해 2나크파가 필요했을 뿐이다. 골드 두 개, 맨체스터 세 개.

그것이 전부였다.

줄리오는 우리 동네의 상징이었다.

줄리오, 어제는 어디 있었어? 아바 쇼울에 갔었나?